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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욱 화백은 2006년 '산과 솔과 하나님, 그리고 나'(도서출판 삼원)라는 제목을 가진 수상록을 발간했다.
저자는 머리글에서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인생 경험과 예술 정신을 후세에 넘겨 주어야 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그는 이 글들이 힘들게 작업하는 젊은 화가들에게 한줌의 희망과 격려가 되기를 소망했다.
저자는 미술명문인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중등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작품활동을 해 왔다.
책의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저자의 그림은 산과 소나무에 대한 관조, 그리고 하나님과 자신이라는 신앙과 성찰로 점철되어 있다.
이러한 자신의 삶과 예술을 이 책에 진솔하게 담았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하여 양승욱 화백의 삶과 예술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여길 클릭하면 플래시북으로 만들어진 책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눈물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 : 2016-07-12     조회 : 978  


그리스도의 눈물



내 주의 뜻대로 행 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부산 피난시절,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어머니와 누이들은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였다. 자연스레 나의 신앙생활도 그때부터 이어져왔다. 그 무렵, 주일학교 예배 시간 때면 으레 건빵과 사탕을 받아오는 재미에 이끌려 일요일이면 날마다 빠지지 않고 열심히 교회에 나갔던 기억이 환하다.
서울로 이사한 뒤 운명적으로 기독교 계통의 중. 고등학교에 입학해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수요예배와 새벽기도회 등에 참석하며 신앙생활이 몸에 배었다. 그러나 군대에 간 뒤 와 복학한 뒤에 방종과 좌절로 교회를 멀리하고 방황의 나날을 보냈다.
그렇다고 신앙심마저 버린 것은 아니었다. 늘 마음속에 예수님과 십자가를 간직하며 지냈다. 그렇게 1970년대를 맞았고, 처음 직장생활을 할 무렵 우연찮게 대학로의 홍사단에서 함석헌 선생님의 <씨알의 소리> 강연을 듣게 되었다. 그 뒤 퀘이커 모임, 무교회주의 성서 연구회 등에 참석하면서 소원했던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뒷날 기독교도인 여성을 만나 결혼하면서 교회에도 출입해 10여 년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주일이면 버스를 갈아타고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렸고, 모임에도 반드시 참석하여 성경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귀가했다.
그러나 시련과 아픔을 통해 하나님은 나를 시험하시고 연단시키려는지 교단 정치에 휘말린 교회 분쟁으로 교권다툼, 파벌싸움. 급기야 목회자 비리 등으로 교회가 찢겨지고 교인들이 쫓겨나고 뿔뿔이 흩이지는 과정을 겪었다.
좌절과 실망 중 차체에 이사를 하고 교회를 옮겨 신앙생활을 하다가 똑 같은 경우를 또 겪었다. 치열하게 두 쪽으로 갈라져 서로 넥타이를 맨 채로 멱살을 잡고 싸우고, 정통 시비와 피비린내 나는 교인쟁탈전이 벌어지고 결국은 겨우 수십 명씩 따로 모여 예배를 드리는 과정에서 전혀 은혜가 되지 않았다.
무조건 믿는 맹목적 신앙에서 이제는 충분히 생각하고 따져본 뒤 제대로 알고 믿자고 은혜받기를 갈망하며 근처 교회를 순방했다. 목사님의 설교가 주로 예수 잘 믿고 복 받고 잘살자는 비슷한 내용의 반복적이고 기복주의 설교들이었다.
천편일률적인 코미디 수준의 입에 발린 저질설교, 교회조직 속에 묶어두려는 제직회, 구역예배, 전도회 등 울타리와 조직 속에 묶어 사생활과 자유를 구속하고 간섭하며 얽매이는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교인은 그저 사교모임의 일원이고, 들러리에 불과했다. 순종하고 복종하며 사람사귀고 사교하고 부대끼고 피곤한 회의 참석 등.
예술에서도 역시 시간과 돈이 가장 필요하다. 목마른 영혼에 은혜받기를 갈망하며 내 잠자는 영혼을 일깨우기 위해 그 아까운 시간을 할애하여 예배에 참석하면 교회에서도 끊임없이 시간과 물질과 봉사를 요구하며 축복받자는 수백 번의 반복적인 설교에 식상한 어느 날 내 동창인 신학자와 만나 신앙 상담을 하고 자문을 구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승욱아 예수와 십자가는 네 마음속에 있어 다른 것들은 다 부수적이고 껍데기에 불과한 거야. 사람과 동행하는 신앙이 아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참 신앙이야"라고 조언해주었다.
민감하고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나약하고 질그릇 같은 나. 아니꼽고 더러운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는 성격인 나. 주일이면 골방에 박혀 기도밖에 할 일이 없던 어느 날, 나는 배낭을 메고 산으로 향했다.
그때 성경을 끼고 교회에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풀 섶과 가시덤불을 헤치며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을 찾아 한 봉우리를 목표삼아 길도 없는 숲을 헤메이며 봉우리의 바위에 올라 눈을 감고 나무의 숨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나는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내가 기도하는 곳에 하나님이 임재 하신다는 확신이 들어 눈을 떴을 때 봉우리 바위틈에 기우는 햇빛을 받으며 매서운 바람에 몸을 기운 소나무를 보았다.
높은데 있는 나무일수록 더 강한 바람을 맞고 끊임없이 바람에 흔들려도 자기 모습을 잃지 않는, 매섭게 부는 바람과 그 바람을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등 굽은 소나무. 침묵의 소리, 바람의 깊은 울음 속에서 더욱 꿋꿋해지는 어리고 여린 소나무.
그 잎새의 푸르름과 줄기의 붉은색이 인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하나의 인격체로 보여 졌다. 나는 그때 예수의 울음과 눈물을 보았다. 그것은 예수의 살과 피이고, 인간의 살과 피 이다.
그 뒤로 홀로 산행을 할 때마다 인적이 없는 작은 봉우리들을 찾았고, 예외 없이 봉우리 바위 틈새로 줄기가 기운 앉은뱅이의 외소나무를 보았고, 앉아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형식과 조직을 좋아하고 자기 입맛의 울타리 안에서 얽매이고 안주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을 사귀는 사교 모임을 갖고 회의를 하고 계급을 만든다. 그래서 권위주의와 파벌이 생기고 귀족화하고 기업화한다.
신앙보다는 교회활동과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여 광신 화하고 세속화하고 사업화하면서 타락해진다.
나는 그러한 계급과 구속이 싫다. 장로와 권사라는 호칭의 귀족(?)이 싫다. 자유인이고 싶고, 평교인이 좋다.
주일이면 홀로 산행을 한다. 건강을 다지기 위함도 있지만 조용한 곳, 한적한 곳, 좀 더 하나님과 가까이 가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모세가 호렙 산상에서 미디안 광야를 보며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떠벌리거나 나서기 싫고 울타리와 형식이나 구속을 싫어하는 나는 혼자 기도하고 혼자 묵상하고 혼자 경배 드리는 것이 참 편하다.
오늘도 노송 아래 누워서 하늘로 올라가는 소나무. 승천하는 혼과 솔을 본다.
나는 과거에 교회에 다녔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가고 싶어도 여건이 되지 못하거나, 돈이 있어야 교회에 가지 돈 없으면 교회에서도 찬밥이라는 돈 밝히는 헌금강요, 파벌싸움 등으로 교회에 대한 실망과 아픔과 상처와 부정적 인식을 가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도 십자가, 예수,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며 교회 밖에서도 구원이 있고 천국을 믿는 기독교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들의 신앙과 믿음이 지켜지도록 희망과 용기와 격려가 필요 하다고 본다.
나는 교회를 나가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앙의 본질보다는 부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화가가 인사동에 나가 화단활동이나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아도 좋은 그림을 그리면 화가인 것처럼 일요 예배나 교회조직에 활동하지 않아도 기독교적인 믿음이 있다면 신앙인 이라고 믿는다. 생활은 뒷전이고 교파주의와 교단주의, 교회 일에만 열중하는 맹목적이고 광신적인 신앙은 내게 혐오감을 준다.
아마도 나는 체질적으로 무교회주의자이고, 다원주의자다. 나는 영혼의 순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