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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욱 화백은 2006년 '산과 솔과 하나님, 그리고 나'(도서출판 삼원)라는 제목을 가진 수상록을 발간했다.
저자는 머리글에서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인생 경험과 예술 정신을 후세에 넘겨 주어야 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그는 이 글들이 힘들게 작업하는 젊은 화가들에게 한줌의 희망과 격려가 되기를 소망했다.
저자는 미술명문인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중등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작품활동을 해 왔다.
책의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저자의 그림은 산과 소나무에 대한 관조, 그리고 하나님과 자신이라는 신앙과 성찰로 점철되어 있다.
이러한 자신의 삶과 예술을 이 책에 진솔하게 담았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하여 양승욱 화백의 삶과 예술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여길 클릭하면 플래시북으로 만들어진 책을 보실 수 있습니다.
 
  철저히 고독해지자.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 : 2016-07-12     조회 : 801  


철저히 고독해지자.


몇 년 전 용문산 자락에 위치한 도자기를 만드는 선배의 공방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게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문 안쪽에 붙은 철저히 고독해지자"라는 커다란 문구였다. 선배가 손수 쓴 각오였다.

그런데 몇 달에 한 번씩 서울을 방문한다는 선배는 그 문구대로 살기가 무척 어렵다고 토로하였다.

지난번 여름 방학 때는 강원도 양구의 동료인 선배 선생님 별장을 방문하였다. 그 선생님 말씀인즉 이 일대 몇 가구가 밭농사를 지으며 사는데, 거의 산 하나에 한 가구 정도의 화전민들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뒷산 넘어 버려진 농가에서 한학도 하고 글씨도 쓰는 서예가 한 분이 홀로 도를 닦으며 살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그를 만난다고 했다. 어떤 분인가 궁금해 서예 작품도 볼 겸해서 선생님을 재촉해 길을 따라 나섰다.

선생님과 나는 40분 동안 길도 없는 풀 섶을 막대로 헤치며 첩첩 산중의 폐가에 다다랐다. “운산"이라는 호를 가진 그분은 서울과 독일에서 서예 개인전도 가졌다고 했다. 하지만 5-6년 전부터 산속에 틀어박혀 자기만의 서체를 개발하고 있다는데, 실제로 나무 가지 끝을 망치로 으깨어 말꼬리처럼 모은 목필木筆로 글씨를 쓰고 있었다.

그는 여러 가지 약초로 담근 술을 내왔다. 방으로 들어왔던 뱀을 잡아 담근 뱀술도 보여주었다. 이튿날 아침에 냇가에서 세수를 하고 풀 섶으로 나오는 데, 슬리퍼 끝에 한 나무 가지가 밟히는 느낌이 들어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서 검은 나뭇가지 같은 것이 재빨리 움직이며 풀 섶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혼비백산하여 방으로 들어가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분은 그런 일은 흔히 일어난다면서 뱀은 자기를 해치기 전에는 사람을 절대로 공격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분은 뱀에 물려 며칠을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난 적도 있단다. 뱀은 공격자를 공격하는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뱀이 스스로 위협을 느껴 공격한 것이리라.

10년 계획으로 산중으로 들어왔다는 그는 밭에 나갈 때는 등산 구두나 장화를 신고 농사일을 한다고 했다. 문명의 이기라고는 전화나 전기뿐이었다. 냉장고도, TV, 컴퓨터도, 핸드폰도 없이 고독과 함께 살아 왔던 것이다.

눈이나 비가 올 때에는 누구도 들어오거나 나가기 쉽지 않은, 모든 것이 정지된 듯 편안하고 아늑한 그곳에서 그는 이 세상에 오직 홀로 존재하는 듯이 보였다. 기계문명에 구속당하지 않고 자연 속에 동화된 듯 자유로이 순수하게 살아가는 그분이 생각난다

나는 몇 해 전 오랫동안 몸담았던 교직을 떠났다. 그림만 그리고 싶어서였지만, 문명의 이기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컴퓨터를 사서 이메일을 개설해 인터넷을 이용했다. 매일같이 몇 시간씩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고 게시판을 열어 소식도 주고받아 보았으나, 얼마가지 못해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느라 시간을 허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 같은 문명의 이기가 나의 작품에는 그다지 도움 되지 않았다. 작업을 할 때도 수시로 울려대는 핸드폰 소리와 화면 가득히 늘어선 스팸메일들은 작품생활의 방해자요 혼란스러운 도구에 불과했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이메일, 게시판, 인터넷 창을 아예 없애버렸다. 게다가 나는 핸드폰도, 승용차도 없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천연기념물이라고 한다. 운전을 하지 않은 지도 30년이 넘었다.

물론 승용차가 없으니 불편한 점이 없는 건 아니다. 특히 가족과 함께 움직일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좋은 점이 많다. 무엇보다 많이 걸어 건강에 도움 된다. 게다가 놀러 다닐 궁리를 하지 않아도 되고, 어딜 가도 주차나 운전에 신경 쓰지 않고 맘껏 술을 마실 수도 있다.

승용차로 움직일 일이 있으면 택시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면 친구 차에 동승하면 된다. 이를 보고 바보 같다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이런 생활이 편하고 좋다. 어쩌면 원시적 삶이 내 체질에 맞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나는 외출도 별로 하지 않고, 친구도 잘 만나지 않는다. 그 대신 집에서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하고, 그림을 그린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좋은 작품을 하는 삶이고 싶다

현대의 인간은 승용차, 핸드폰, 컴퓨터, 신용카드 등 기계문명의 구속과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다. 어느 명사는 단순한 삶을 실천하기 위해 신용카드를 가위로 싹둑 잘라 버린 후 삶의 여유를 되찾았다고 한다.

기계문명의 노예로 살아가기보다 기계문명에 구속되지 않고 편안하게 사는 게 내 삶의 철학이다.

인생은 홀로 뛰는 마라톤이다. 어차피 혼자니까. 그런 점에서 차라리 고독하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