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심문화전통과 양식의 정립
미국 미술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미국의 화풍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궁금했다. 잘 알다시피 미국의 역사는 짧다. 이민족이 원주민을 지배하면서 성립된 국가라서 전통이라는 것도 없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오늘날 세계 미술의 중심이 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유럽인들이 전쟁을 피해 그곳으로 건너간 뒤에 미국 미술의 도약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가장 미국적 작가로 꼽히는 벤 샨Ben Shahn(1898-1969)은 유럽인이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나 파리로 건너가 현대 회화를 배운 뒤 귀국했던 화가다. 그때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여기서 목수의 자식으로 생을 얻었다. 32세다. 프랑스의 미술은 나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
파리가 영원한 창작활동 공간이 못되었기 때문에 귀국했다는 발언이다. 미국과 프랑스는 지리적 환경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환경 또한 다르다. 그만큼 이국의 생활이 그의 성격에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귀국해서 남긴 작품을 보면, 미국의 현실 즉 사회의식, 인종적 평등, 노동조합운동, 사회적 정의가 억제된 감정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에 문자가 들어가고 포스터나 모던아트적인 형과 색의 변형이 너무나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미국의 문화와 감정을 제대로 소화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미국인 화가 마르스덴 하틀리Marsden Hartley(1877-1943)는 인상주의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다 유럽으로 나가 여러 유파들을 따르다 독일의 표현주의 회화에 추상적인 형상을 더하여 자유로운 추상구성 작품에 몰두했다. 그때가 이미 그의 나이 예순을 넘고 있었다. 그때 그는 이렇게 조국 미국을 그리워했다.
“내가 태어난 고향 메인Main의 나라여, 인내와 관용을 가지고 이 방탕한 자식의 귀향을 영정하여다오. 오래지않아 나는 이 볼을 당신의 볼 위에 부비면서 안드라스고 강(메인 주의 강)의 유유하고 풍부하며 장중하게 흐르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기쁨에 흐느낄 것이다."
이 유랑 화가는 노년에 이르러서 소년시대를 보낸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울적해있던 감정의 끈을 풀어 헤치고 오랜 동안 연마한 기술의 의미를 갖도록 했다. 그는 생애 최후의 10년 동안 그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을 수 없이 제작했다.
사실, 우리는 우리나라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이웃나라를 배운다. 개개의 예술작품이 제각기 특유한 개인적인 양식을 갖고 있지만, 예술가는 다 역사 속에서 역사적 존재로 살아 나가야 하기 때문에 작품에 유파와 국토와 민족과 시대의 양식을 부여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시대든 그 시대 나름의 상징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상징은 특히 미술에서 잘 나타난다. 미술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직관이기 때문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한국적이라면 대놓고 폄하하고, 외국 것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풍토가 있다. 사대주의 민족성 때문이리라.
어릴 적에 외국 영화를 볼 때마다 영상 속의 풍경을 천국처럼 느끼고, 외국 영화배우들은 천사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굿이나 무당을 보고서는 귀신을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우리 굿의 창이나 가락이 오히려 더 신비롭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우리 문화의 소박함과 흥겨움에 인간적으로 가슴에 스며들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가슴 아픈 것은 우리나라에서 서양 예술이 우리 예술보다 더 대접받고 환영받는 일이다. 이를테면 서양 유명작가의 전시나 서양음악, 오페라 등은 입장료가 비싼 데도 매진이지만, 우리 고유의 전통이나 회화나 국악, 판소리 등은 입장료가 쌈에도 관객이 별로 없다.
나의 가슴에는 샤갈이나 달리의 그림보다 박수근이나 박생광의 그림이 더욱 더 깊이 와 닿는다. 아마도 이들의 그림이 우리의 흙, 우리의 풍토 속에서 우리 중심의 문화와 전통의 양식을 많이 흡수한 ‘한국적’ 미술이기 때문이리라.
여기서 한국적이라는 말은 우리 민족의 성정과 생활양식에서 우러난 미감일 것이다. 다시 말해 무리하지 않은 아름다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소박한 아름다움, 호젓한 아름다움, 그리움이 깃든 아름다움, 속을 고요히 누비고 지나가는 익살의 아름다움 같은 것이 어우러져 생긴 아름다움 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민화적 소재의 화사한 작품, 기와지붕, 산, 바람결 같은 선으로 표현된 농토 풍경, 나지막한 산허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산동네 풍경 같은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문화와 우리 곁에 현존하는 풍정들을 현대적 조형성으로 그려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