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파괴와 폭력
요즘은 국군기무사(옛 보안사)의 이전을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이전한 기무사 자리에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이 들어서고, 그 일대를 복합문화공간인 문화의 거리로 조성하자는 것이다. 이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외국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의 경우,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도심에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접근이 쉽다. 가까운 곳에 있으니만큼 짧은 시간에 미술관, 박물관에 들러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 미술관을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예술의 전당은 도심에서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다. 거기서 작품 한번 관람하려면 적어도 반나절은 다른 일을 포기해야 한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의 외딴 곳에 있어서 여행길에 쏟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심리적으로도 무척 힘든 관람이다.
사람들의 편의성과 접근성을 무시하고 건축했기 때문이다. 물론 미술인이나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이들 공간의 위치 선정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권력자들은 독선과 독단으로 예술의 거리감을 넓혀버렸다.
이런 문제는 다른 미술공간에서도 나타난다. 도심에 위치한, 종로5가에서 혜화동으로 가는 대학로에는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을 비롯한 여러 화랑들이 있었다. 그래서 ‘문화예술의 거리’ 역할도 톡톡히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화랑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하면서 먹고 노는 거리로 변모하고 말았다. 늦은 밤이면 10대들의 볼썽사나운 모습들도 눈에 띈다.
안타깝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현재의 서울대 병원과 의대 자리에 현대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세우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그러면 기존의 문예진흥원 미술회관과 화랑, 연극 공연장이 연결되어 훌륭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변모할 것이다. 대중의 편의성, 접근성이 자연환경에 잘 어울리는 서울의 명소가 되지 않을까?
외국을 여행하면서 절감했던 것은 우리만큼 문화 역사의 단절과 변화를 겪은 민족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의 문화유산은 온전치 못하다. 우리 선조들의 우수한 문화재가 일본이나 미국, 유럽으로 빠져나가고 없다.
유럽의 나라들도 우리처럼 전쟁을 치렀고, 서로 다른 민족에게 지배받았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세기에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렀다. 그럼에도 유럽의 문화재들은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우리와 많은 차이를 보인 것이다.
가장 최근의 일로는 19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의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어버리는 정부의 이벤트가 있었다. 물론 그것이 우리민족에게 치욕을 안겨준 산실이자 일제강점기의 상징이긴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했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을 절충한 건축물이었다. 특히 고대 그리스 건축의 귀두양식(기둥의 머리)과 르네상스 건축의 돔(지붕), 그리고 화려한 실내 장식과 일본 작가들의 벽화가 인상적이었다.
그런 기념비적(?) 건축물을 톱으로 나무를 썰 듯이 동강내어 해체하는 모습을 보고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막대한 이벤트를 벌이면서도 정부에서는 공청회 같은 민주적 의견수렴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당시 집권세력들이 역사와 문화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해석하여 권력을 독단적으로 전횡했던 것이다. 이때 국민은 피동적이었다. 국민의 막대한 혈세가 투입된 국책사업으로서 반문화적 사업임에도 침묵했으니 말이다.
이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총독부 건물을 헐어버리는 일로 일제 유산이 청산될 수 있을까? 물론 가시적으로는 그 효과를 보았을지는 모른다. 건물이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일제 유산을 청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건물을 부수지 말고 남겨둬 국민들이 그걸 보고 과거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도록 했어야 했다.
싫든 좋든 총독부 건물은 우리의 문화유산임에 분명하다. 그것이 비록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의 강요에 의해 지어져 보기에 민망하지만, 역사를 담은 그릇으로서의 역할은 분명히 해왔다고 본다.
전통과 근대와 현대의 3박자를 공유한 근대 문화의 유산을 보존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8.15해방과 6.25의 상흔을 기억하는 차원에서 보존했어야 한다. 그 자리가 어니더라도 그 모습을 그대로 역사박물관이나 전쟁기념관 같은 역사 공간으로 남겨두었어야 한다.
그 안에 우리 민족이 36년간 핍박받았던 상흔들과 당시 민족의 역사적 과오들도 함께 전시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아우슈비츠 나치 강제 수용소처럼 국민의 역사 교육을 담당하는 자료로 활용되어야 했다.
역사는 끊임없이 지속된다. 그만큼 역사는 문화유산으로 후대로 전해지고, 후손들의 교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의 현장은 집권 세력의 입맛대로 해석되고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의 현장으로서 자자손손 물려주어야 한다. 그 역사를 이해시키는 데는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이상의 매체는 없다.
따라서 어떤 문화재, 특히 민족의 애환이 담긴 문화재일수록 손을 대기보다는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민족문화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현실의 삶이 그렇듯이 역사 역시 긍정과 부정 양면이 있다. 따라서 부정의 역사도 감춰버리거나 파괴해버리면 긍정의 역사도 함께 존재하지 않게 된다.
역사는 다시 만들 수도, 건너 뛸 수도 없지 않은가?
6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서울은 또한 세계문화의 보물로 지켜져야 한다.
‘현대문화’라는 이름으로 고층건물의 숲을 이룬 강남과 마구잡이식 재개발의 슬럼화로 서울의 강남,북 간의 문화적 불균형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그에 따라 시민들의 위화감이 날로 높아짐은 물론이다.
이러한 위화감을 감소시키는 방법은 도시 환경의 재구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