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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욱 화백은 2006년 '산과 솔과 하나님, 그리고 나'(도서출판 삼원)라는 제목을 가진 수상록을 발간했다.
저자는 머리글에서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인생 경험과 예술 정신을 후세에 넘겨 주어야 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그는 이 글들이 힘들게 작업하는 젊은 화가들에게 한줌의 희망과 격려가 되기를 소망했다.
저자는 미술명문인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중등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작품활동을 해 왔다.
책의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저자의 그림은 산과 소나무에 대한 관조, 그리고 하나님과 자신이라는 신앙과 성찰로 점철되어 있다.
이러한 자신의 삶과 예술을 이 책에 진솔하게 담았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하여 양승욱 화백의 삶과 예술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여길 클릭하면 플래시북으로 만들어진 책을 보실 수 있습니다.
 
  편 가르기는 그만 하자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 : 2016-07-12     조회 : 512  


편 가르기는 그만 하자


인사동에 나가면 친구들을 만나기 쉽다. 특히 전시회가 오픈되는 날 뒤풀이 자리에서 친구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때의 화제는 전공이 전공인 만큼 대개 미술에 대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미술계 이야기가 가장 많다.

이야기가 무르익다보면 어느새 미술계의 파벌로 이야기가 집중된다. 정치권 못지않은 파벌간의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육두문자가 등장하면서 말이다. 그러다보니 친구들을 만나기가 겁난다.

만남은 물론 좋다. 그러나 그 만남이 건전한 대화가 아닌 서로의 약점을 헐뜯는 자리라면 만남의 의미가 퇴색되기 마련이다. 어떤 잘못에 대해서도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독설은 특히 다시 만날 기회를 차단해버린다. 어떤 일이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같은 면도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옳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따지고 보면, 미술계에서 논의되는 많은 문제들은 미술계 내에서 만들어낸 자업자득이다.

미술가들의 만남에서 가장 많이 오가는 이야기는 미술계의 인사와 미술에 대한 지원 문제다. 그것이 미술가들의 창작과 발표 활동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 권력을 쥔 사람은 미술단체 또는 미술 관련 기관의 수장이나 임원들이다.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미술가 단체는 한국미술협회(약칭 미협’). 그 수장은 이사장이다. 그 단체를 대표할 뿐 아니라 단체의 예산 집행과 전시회 참가 및 수상을 결정하는 권력을 지녔다. 그만큼 미협 이사장에게 미술가들의 시선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3년마다 열리는 미협 이사장 선거는 국회의원 선거 못지않게 과열된다. 회원들 간의 파벌이 형성되고, 상대의 약점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이루어진다. 심지어 회원들의 회비 대납과 회원들의 전시회 지원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투표 날에는 옛날 대통령 선거 유세 때를 연상시키는 투표권자들의 버스 대절 이동 사태도 발생한다.

그만큼 이사장 출마에 드는 비용은 막대하다. 그런데도 선거가 과열되는 것은 당선 뒤에 누릴 수 있는 권력 때문이다. 각종 사업에 끼어들어 선거비용 이상으로 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언론에서 미협 사업에 관련된 부정사건이 기사로 다루어지고 한다.

국내 최고 권위와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공모전인 미술대전의 심사가 돈이나 정실에 의해 좌우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분명 개선되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미협과 성격이 전혀 다른 민족미술인협회(약칭 민미협’)가 있다. 규모는 미협보다 작지만, 소속 회원들 간의 결속력은 훨씬 강하다. 특히 1980년대에 집단적으로 전시나 집회를 벌이면서 기득권 사회에 대해 저항했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했던 민주화 세력이 집권하면서 민미협 회원들이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문화예술인총연합회(약칭 예총’)와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장과 요직이 민미협 출신으로 채워지면서 미술 관련 행사와 예산을 독점한 것이다. 그 이전에는 미협이 그것들을 독점했으니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이 때문에 민미협과 미협 간의 갈등은 커졌다. 이게 오늘의 우리 미술계 모습이다.

어느 날 나는 민중미술 계열 작가의 전시장에 들렀다가 덥수룩한 수염과 머리를 뒤로 묶은 꽁지머리, 그리고 개량한복 차림의 미술가들을 보고서 당혹감과 긴장감을 느꼈다. 그들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일종의 이단자(아웃사이더)였거나 보안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렀다.

그때 그들은 얼마나 외로웠고 고통스러웠을까? 그리고 나는 얼마나 무기력했던가. 그들에게 한 마디의 따뜻한 위로의 말과 도움을 주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들을 만나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러나 요즘 느끼는 것은 민중 계열과 반민중 계열의 대립, 집단 이기주의와 단합주의로 치닫는 현상이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성향의 미술가들은 너그럽게 받아들이면서도 성향이 다른 미술가들은 배척하는 양분논리, 분파주의가 유행한다. 타협이나 조화 없이 집단의 힘으로는 개인이나 소수를 도태시키고, 강자의 기득권을 빼앗으려는 노력이 팽배한다.

특히 미술단체의 인사나 사업, 예산 문제에서 대립은 심각하게 나타난다. 상대가 무엇 하나 잘못 하면 악착같이 그것을 지적하고,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놓으려 한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만나면 싸우고, 남의 인격과 작품을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일이 발생한다. 정말로 신물 나는 일이다.

이제 미술계는 배타주의나 분파주의, 정치화된 운동 정서, 비난 관행을 버리고, 열린 자세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해와 격려로 서로 화합하고 조화를 이루어 미술계의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할 때다.

미술가들은 다른 분야의 사람들보다 단순하고 순수하고 소박하다. 그래서 나는 미술가들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편을 가르고 싸우는 일은 그만 하자. 네 편 내 편 없는 공동체를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