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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가르기는 그만 하자 |
편 가르기는 그만 하자
인사동에 나가면 친구들을 만나기 쉽다. 특히 전시회가 오픈되는 날 뒤풀이 자리에서 친구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때의 화제는 전공이 전공인 만큼 대개 미술에 대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미술계 이야기가 가장 많다.
이야기가 무르익다보면 어느새 미술계의 파벌로 이야기가 집중된다. 정치권 못지않은 파벌간의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육두문자가 등장하면서 말이다. 그러다보니 친구들을 만나기가 겁난다.
만남은 물론 좋다. 그러나 그 만남이 건전한 대화가 아닌 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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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전시문화를 위한 제언 |
올바른 전시문화를 위한 제언
젊은 시절 수많은 전시회를 의무적으로 본 적이 많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인사동이나 대학로의 전시장이나 화랑들을 순방하면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세계와 미술의 흐름을 읽곤 했다.
그런데 가끔 화관과 화분들이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안까지 가득 찬 모습을 보면 당혹스럽다. 작품을 전시하는 것인지, 꽃을 전시하는지 분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을 전시하는 일이니만큼 전시장은 작품들이 효과적으로 보이도록 배치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전시장 안팎이 꽃으로 치장되는 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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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사회 환원 |
작가의 사회 환원
옛날부터 화가는 춥고 배고프다는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일제 강점기나 전쟁 전후에 살았던 화가들은 정말로 춥고 배고팠다. 심지어 예술가는 ‘사회의 기생충’으로 비난받기도 했다.
나도 미술학도 시절 그런 말을 수없이 들었다. 화가가 되려 했을 때 부모님께서 반대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잘 알다시피 우리 민족은 1910년부터 36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참으로 힘든 세월이었다. 하지만 해방 이후 우리 민족은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며 우리나라를 경제 강국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198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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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이미지 |
국가의 이미지
2002년 월드컵 때 거리와 텔레비전은 온통 태극기 물결이었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하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한반도를 뒤덮었던 태극기 물결은 정말 감동이었다. 그런데 그때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태극기의 디자인이 불만스러운 것이다. 태극과 사괘는 그 의미를 알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그리기도 어렵다. 좀 더 쉽게 이해하고, 쉽게 그릴 수 있는 디자인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잘 알다시피 국기는 한 나라를 상징한다. 국가의 존엄과 전통 및 이상을 색과 모양으로 나타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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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평화를 깨는 것도 흰눈이 하게하라 |
이 평화를 깨는 것도 흰눈이 하게하라
흰눈이 내리는 흰눈의 나라는
흰눈 자체만으로도 하얗다, 고요하다, 가득하다.
그 누구도 한 발자국도 들어서지 못한다.
한 발자국도
하얗다, 고요하다, 평화스럽다.
이 고요를 깨는 것, 내리는 흰눈이고
이 평화를 깨는 것, 내리는 흰눈이고
흰눈이 내리는 흰눈의 나라는 흰눈이 하게하라
흰눈이 하게하라
흰 발자국도 들어서지 못한다.
신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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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승 |
홍종명 선생님의 그림
나의 스승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가네
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 기억하리 스승의 은혜
살아가면서 늘 떠오르는 스승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 스승은 지금은 이 땅에 계시지 않는다.
2004년 9월 6일, 운명하셨기 때문이다. 그 몇 달 전에 사모님께서 소식을 보내셔 방문했을 때 선생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시지 못한 채 사모님과 얘기를 나누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미소만 짓고 계셨다. 고교 시절 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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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작 |
처녀작
대여섯 살 무렵, 어머니는 피난지 부산의 판잣집에 조그만 검은 칠판과 분필을 갖다놓으셨다. 형제들에게 한글이나 깨우치게 할 목적으로 공책이나 연필 대신에 준비한 것이리라.
그때 나는 칠판에 동네 골목길 우물가에서 물을 깃는 아낙네들의 모습을 그렸다. 도화지나 연필이 귀했던 시절, 글자나 숫자 대신에 하얗게 그려진 그 그림을 어머니께서 보시더니 형제들 앞에서 나를 칭찬해주셨다. 어찌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그리고는 몇날 며칠이 지나도 어머니는 그 그림을 지우지 못하게 하셨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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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
너
억천만 불빛 속에
너 하나 있고
이렇게 간다.
휘 지나간 억겁의 시공
그리도
애타게만 서서
이제야
설레는 바람 향하여
서럽게
너를 안는다.
1990년 2월 16일, 서울 돈암동에서
노문
양 화백께
전시장 입구 초입에 걸렸던 대작大作의 이미지와 너무나 흡사한 시작詩作이 있어서 드립니다. 실로, 공동작업인 듯한 감이 듭니다. 보다 큰 성과와 정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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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
차례
머리글 _ 황혼을 바라보며
1부 회상
처녀작
나의 스승
2부 생각
국가의 이미지
작가와 사회
올바른 전시문화
편 가르기는 이제 그만
선거 유감
순수 상실의 시대
새로운 시대의 미술교육
비평과 비평가
문화 파괴
문화전통의 정립
철저한 고독
세월
3부 그림
모노크롬
들판
민화
소나무
4부 믿음
하나님의 선물
은혜의 딸, 하아린
그리스도의 눈물
나의기도
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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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글-황혼을 바라보며 |
머리글
황혼을 바라보며
화가가 되고 싶었다.
20대에는 예술이 꿈이었다.
30대에는 생활이 예술을 압박했다.
40대에는 생활과 예술을 다 얻고 싶지 않았다.
50대에는 예술과 함께 돈, 명예, 신앙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런 세월을 지나
어느덧 60을 넘어 황혼을 바라보고 있다.
돈, 지위, 명예를 벗어던지고,
머리와 손이 아닌 가슴으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정말로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 좋은 그림만 그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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